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스 아이슬러 (문단 편집) == 창작 성향 == 아이슬러의 창작 시기는 초기(학습기)-중기 I(독일 활동기)-중기 II(망명 시기)-후기(동독 정착기)로 크게 개괄할 수 있는데, 초기에는 생애 란에 설명한 대로 쇤베르크 등 '신 빈 악파' 의 전면적인 영향 아래 있었다. 당연히 그들이 사용한 무조나 12음 기법의 어법을 수용하고 있는데, 단 피아노 소나타나 디베르티멘토 같은 초기작에서도 같은 기법을 수용하면서도 조성음악의 감을 여전히 유지하면서 고유의 독특한 풍자와 신랄함을 담아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베를린 이주 직전이었던 1924년에 발표한 멜로드라마 '팔름슈트룀' 은 스승 쇤베르크의 '예술지상주의' 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곡이었는데, 이어 '한스 아이슬러의 일기' 에서는 자기 자신의 소시민 [[근성]]마저 까버리는 등 온갖 부조리를 자근자근 씹었다. 그리고 별 내용도 없는 신문 기사 쪼가리를 가사로 사용한 '신문 조각' 같은 꽤 특이한 아이디어의 곡도 내놓았다. 하지만 이들 작품은 당시 공산당 등 사회주의 운동의 주축이었던 노동자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전위적인 면모 때문에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결국 아이슬러는 그 동안 배운 현대적인 작곡 기법을 대부분 포기했고, 당시 유행하던 민중가요의 양식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바흐]] 음악의 굳건한 조형미와 [[재즈]]/[[블루스]] 등 미국에서 넘어온 유행가의 양식을 결합해 음악적인 흥미와 가사의 선동성 모두를 충족시키는 창작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브레히트와 공동 작업을 시작한 뒤로 작품의 구성과 완성도 면에서 출중한 곡들이 많이 나왔는데, 여러 극음악과 대표적인 민중가요들인 '[[비밀스러운 행진]]', '[[http://youtu.be/B51HI0MPUrQ|연대의 노래(Solidaritätslied)]][* 경제 대공황기에 등장한 좌파 영화 <쿨레 밤페>의 주제가이기도 하다.]', '[[통일전선가|통일전선의 노래(Einheitsfrontlied)]]' 등이 손꼽힌다. 이들 곡은 비슷하게 미국 물을 먹은 바일의 곡과 다르게 가사의 주제를 직접 연주하고 듣는 이에게 전달하고자 했고, [[프리드리히 빌헬름 에른스트 부슈|에른스트 부슈]] 같은 민중가수들에 의해 빠른 속도로 인기를 얻게 되었다. 아직 초기 유성영화 단계였던 때부터 시작한 영화음악의 경우에도 결코 설렁설렁 써내는 일이 없었는데, 영화음악에서 주제를 따와 관현악 모음곡 등으로 재구성하는 등의 작업을 일찌감치 시도했다. 아이슬러는 현학적인 현대 기법 뿐 아니라 신고전주의, 후기 낭만주의 등 '음악은 순수 예술일 뿐이고, 정치와는 무관하다' 고 주장하는 모든 사조에 대해 반대했고, 많은 작곡가들이 영화음악을 단순히 장면 묘사에 그치는 '미키마우싱' 이나 청중들의 막연한 감성에 호소하는 류의 음악으로 양산하는 현실에도 비판적이었다. 나치 집권 후 계속되었던 망명 생활 중에 아이슬러의 음악관도 차츰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그 동안 의도적으로 기피했던 12음 기법을 다시 작곡에 도입했다. 이는 나치가 공개적으로 헐뜯었던 예술 사조를 오히려 대놓고 쓰면서 엿먹이려는 의도였고, 소교향곡이나 아홉 곡의 실내 칸타타 같은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 망명 후에는 먼저 도착했던 스승 쇤베르크와의 관계도 회복되었다. 쇤베르크는 1933년에 베를린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해고당하자, 항의도 하지 않고 곧장 짐을 싸 미국으로 이주했다. 유대인 음악인 중 가장 빨리 망명한 사례. '비에 관한 열네 가지의 묘사' 같은 곡은 스승에게 ~~[[존나좋군]]?~~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미국 망명기의 아이슬러 작품들은 대체로 그 폭이 좁아졌는데, 망명자로서 섣불리 정치적 신념을 내비치기 힘들었던 상황과 ~~[[돈이 없어]]~~빈곤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망명 중의 아이슬러는 주로 영화음악 작곡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명성을 얻었는데, 망명 이전과 마찬가지로 영화음악을 기악 작품으로 편곡하는 [[2차 창작]]도 계속 시도했다. 위에 쓴 '비에 관한...' 도 원곡은 영화음악이었고, '실내교향곡' 이나 '다섯 개의 관현악곡' 도 마찬가지로 영화음악에서 주제를 빌어오거나 편곡한 곡들이다. 한편 망명 생활 중에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망명자로서 느끼던 복잡한 심경을 담은 '헐리우드 노래집' 이나 반파시즘 칸타타 '독일 교향곡' 도 주목할 만한 대작들이다. 전자는 브레히트 외에 뫼리케, 괴테, 아이헨도르프, 횔덜린, 아나크레온 등의 시를 가지고 만든 가곡집인데, 각 가곡들은 기껏해야 1~2분 남짓한 길이지만 원시들을 꼼꼼히 검토하고 재구성해서 망명 생활의 고통과 파시즘에 대한 비판, 왜곡된 독일 정신에 대한 조롱 등으로 확 바꾸고 있다. '독일 교향곡' 은 브레히트-아이슬러 콤비의 작품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복잡한 작품으로 손꼽히는데, 명칭은 교향곡이지만 곡 속에 고전적인 기악 교향곡과 성악 칸타타 등 여러 장르가 혼합되어 있다. 유럽으로 돌아간 후에는 다시 망명 전의 어법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단 쇤베르크로부터 배운 현대적인 작곡 기법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교육적인 측면에서 대단한 장점이 있음을 인정하고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가르쳤는데, 쇤베르크를 '부르주아 작곡가' 라고 까던 동독 정부로서는 대단히 거슬리는 일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